바쁜 분을 위한 3줄 요약
- 등기부등본은 집 볼 때·계약할 때·잔금 날, 세 번 떼어 보세요.
- 집주인 빚과 내 보증금을 더해 집값의 70~80%를 넘으면 계약을 다시 생각하세요.
- 이사 당일 전입신고·확정일자를 끝내고, 보증금 반환보증까지 가입하세요.
계약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습니다. 중개사는 "요즘 이 정도 조건이면 금방 나가요"라며 펜을 내밉니다.
집은 깨끗하고, 집주인도 친절해 보입니다. 그런데 바로 이 10분이 수억 원을 지키느냐 잃느냐를 가릅니다.
전세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"계약할 때는 몰랐다"고 말합니다. 하지만 서류 한 장을 펼치고, 계산기를 한 번 두드리고, 앱 하나를 열어 보면 위험 신호가 미리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. 도장을 찍기 전, 아래 순서대로 손을 움직여 보세요.
등기부등본을 세 번 떼어 보세요
등기부등본은 집의 "주민등록등본"입니다. 누가 주인인지, 집을 담보로 얼마를 빌렸는지가 모두 적혀 있습니다.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주소만 넣으면 몇백 원~천 원 정도에 바로 열람할 수 있습니다.
언제 떼나요? 집을 보러 간 날,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, 잔금을 치르고 전입신고 하는 날. 이렇게 세 번 확인합니다. 계약과 잔금 사이에 집주인이 바뀌거나 새 대출이 잡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.
무엇을 보나요?
- 갑구(소유권): 계약서에 적힌 임대인 이름과 등기부등본의 소유자가 같은지 대조합니다. 다르면 그 자리에서 멈추세요. 대리인이 나왔다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반드시 받아 둡니다.
- 갑구에 '신탁'이라는 글자: 소유권이 신탁회사로 넘어간 집입니다. 신탁회사 동의 없이 맺은 전세 계약은 보호받지 못할 수 있으니, 이런 집은 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.
- 을구(대출): '근저당권 설정'과 '채권최고액'을 찾습니다. 채권최고액은 보통 실제 빌린 돈의 120~130%로 잡히므로, 이 금액을 집값에서 먼저 빼고 계산합니다.
- 가압류·가처분·경매개시결정: 하나라도 보이면 계약하지 마세요. 집주인이 이미 빚 문제로 다투고 있다는 뜻입니다.
깡통전세인지 직접 계산하세요
"깡통전세"는 집주인의 빚과 내 보증금을 합친 금액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더 큰 집입니다. 겉보기에는 멀쩡해도,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순간 내 보증금이 빈 깡통처럼 사라집니다.
계산은 간단합니다.
(근저당 채권최고액 + 내 보증금 + 먼저 들어온 세입자 보증금) ÷ 집값
매매가 3억 원짜리 빌라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. 근저당이 3천만 원 잡혀 있고, 내가 2억 7천만 원에 전세로 들어간다면 합계는 3억 원, 집값의 100%입니다.
문제는 경매입니다. 빌라는 경매에서 시세보다 한참 낮게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.
낙찰가가 시세의 75%인 2억 2,500만 원에 그치면, 은행이 3천만 원을 먼저 가져가고 나는 1억 9,500만 원만 돌려받습니다. 보증금 7,500만 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.
그래서 이 비율이 70~80%를 넘으면 계약을 다시 생각하세요. 아파트보다 시세가 들쭉날쭉한 빌라·다세대·오피스텔은 더 낮게 잡는 편이 안전합니다.
집값은 어디서 확인하나요?
-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같은 단지·같은 면적의 최근 거래가를 찾습니다.
- 국토교통부 안심전세앱을 열면 주변 시세와 전세가율, 그리고 보증금을 떼먹은 이력이 있는 '악성 임대인' 명단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.
- 중개사가 보여 준 시세만 믿지 마세요. 숫자는 내 손으로 직접 찾습니다.
집주인의 세금 체납과 다른 세입자를 확인하세요
집주인이 세금을 밀린 채로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, 밀린 세금이 내 보증금보다 먼저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. 그래서 집주인의 지갑 사정까지 들여다봐야 합니다.
- 미납 세금 열람: 2023년부터 세입자는 계약 전에 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국세·지방세 체납 여부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. 가까운 세무서나 주민센터에 임대차계약서(또는 가계약서)를 들고 가서 신청합니다.
- 납세증명서·확정일자 현황 요구: 같은 해부터 집주인은 계약할 때 납세증명서와, 이 집에 먼저 살고 있는 세입자들의 확정일자 현황을 세입자에게 보여 줘야 합니다. 당당하게 요구하세요. 보여 주기를 꺼린다면 그 자체가 위험 신호입니다.
- 다가구주택이라면 특히 주의: 한 건물에 여러 세대가 사는 다가구주택은 등기부등본에 세입자가 나오지 않습니다. 앞 세입자들의 보증금 합계가 크면, 내 순서가 와도 남는 돈이 없을 수 있습니다.
공인중개사와 계약서를 꼼꼼히 다듬으세요
- 중개사 조회: 국가공간정보포털의 '부동산중개업 조회'에서 이름과 등록번호를 검색합니다. 사무실에 걸린 등록증과 실제 계약하는 사람이 같은지도 확인하세요.
- 중개대상물 확인·설명서 받기: 중개사가 권리관계와 시세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남는 문서입니다.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.
- 특약 넣기: 계약서에 아래 같은 문장을 넣어 두면 분쟁이 생겼을 때 나를 지켜 줍니다.
- "잔금일 다음 날까지 임대인은 새로운 근저당 등 권리를 설정하지 않는다. 위반 시 계약을 해제하고 보증금 전액을 즉시 반환한다."
- "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이 거절되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돌려준다."
- 돈은 집주인 계좌로: 계약금과 잔금은 반드시 등기부등본상 소유자 명의 계좌로 보내세요. 중개사나 대리인 계좌로 보내라고 하면 거절합니다.
이사하는 날,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끝내세요
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내 보증금에 "순번표"를 붙이는 일입니다. 순번표가 빠를수록 경매에서 먼저 돈을 돌려받습니다.
- 이사한 당일, 주민센터를 찾거나 정부24에서 전입신고를 하면서 확정일자도 함께 받습니다.
- 이 효력(대항력)은 전입신고 다음 날 0시부터 생깁니다. 그 사이 집주인이 같은 날 대출을 받으면 은행이 순서를 앞지를 수 있습니다. 그래서 위 특약으로 "잔금일 다음 날까지 새 대출 금지"를 걸어 두는 것입니다.
- 잔금을 치르기 직전에 등기부등본을 한 번 더 떼어 보세요. 그사이 바뀐 것이 없을 때만 잔금을 보냅니다.
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세요
모든 확인을 마쳤어도 마지막 안전벨트는 매야 합니다. 주택도시보증공사(HUG), 한국주택금융공사(HF), SGI서울보증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에 가입하면,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보증기관이 먼저 돈을 내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받아냅니다.
- 보증료: 보증금과 주택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연 0.1~0.2% 수준입니다. 보증금 2억 원이면 1년에 20만~40만 원 정도로, 수억 원을 지키는 값으로는 크지 않습니다.
- 가입 조건 먼저 확인: HUG는 보증금이 집값(빌라는 공시가격 기준으로 환산)의 일정 비율을 넘으면 가입을 받아 주지 않습니다. 계약 전에 HUG 홈페이지나 앱에서 이 집이 가입 가능한지 미리 조회해 보세요. 가입이 안 되는 집이라면 그 자체로 위험이 크다는 뜻입니다.
- 보증료 지원: 청년·신혼부부라면 지자체가 보증료를 대신 내주는 곳이 많습니다. 사는 지역의 시·구청 홈페이지에서 "전세보증료 지원"을 검색해 보세요.
이미 문제가 생겼다면
집주인이 연락을 끊거나 만기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혼자 버티지 마세요.
- 이사 가기 전에 '임차권등기명령'부터 신청합니다. 법원에 신청하면 이사를 나가도 내 순번표(대항력)가 그대로 남습니다.
-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(지역별 설치)나 주택도시보증공사 상담 창구에 연락해 피해자 지원 대상인지 확인합니다.
- 반환보증에 가입했다면 보증기관에 보증이행을 청구합니다.
계약 전 체크리스트
| 언제 | 할 일 |
|---|---|
| 집 보러 간 날 | 등기부등본 1차 확인, 안심전세앱으로 시세·전세가율·악성 임대인 조회 |
| 계약 전 | 깡통전세 계산(70~80% 넘으면 재고), 집주인 미납 세금 열람, 반환보증 가입 가능 여부 조회 |
| 계약하는 날 | 등기부등본 2차 확인, 신분증·소유자 대조, 납세증명서·확정일자 현황 받기, 특약 넣기, 소유자 계좌로 계약금 |
| 잔금·이사하는 날 | 등기부등본 3차 확인 후 잔금, 전입신고 + 확정일자 당일 처리 |
| 이사 후 |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, 계약서·영수증·확인설명서 보관 |
전세 계약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돈이 오가는 순간입니다. 번거로워 보이는 이 과정이 실제로는 하루, 길어야 이틀이면 끝납니다. 오늘 집을 보러 간다면,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등기소부터 열어 보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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